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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스펙터클한 꿈을 꾸는 편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빈도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최근에도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대홍수를 꿈에서 겪고 난 뒤 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숭고함 같은 것이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았다.
그 거대한 물의 범람은 꿈속에서 세 번 일어났다. 처음은 열심히 도망치면 간신히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였고, 두 번째는 하늘과 땅을 통째로 메울 듯 두껍고 거대한 벽이 되어 하나의 군대처럼 무서운 속도로 몰려와 곧 세상을 덮쳐버릴 기세였다. 마지막은 이미 지구 전체가 물속에 잠겨, 땅이 아닌 물의 대지가 젤리 같은 촉감으로 변한 상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이었다.

언젠가부터 삶에 대한, 그리고 음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아진 나의 내면과 자아를 이 꿈이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물의 어마어마한 양과 부피, 가늠할 수 없는 무게감은 어떤 존재보다 거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감각할 수 있는 명확한 소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나를 짓누르는 두려움의 박동도 꿈속의 나에게는 감감무소식이었고 나는 매우 덤덤했다. 마치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이 두려움’은 내가 만들어낸 높이와 부피만으로 커져버린, 미세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허상의 소리를 담아보려 했다. 열려 있는 제한 속에서 만들어진 소리들, 한없이 가볍지만 동시에 끝없이 무거운 소리들을 조합해 본다. 그 간극 속에서 때로는 허무함이, 또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융합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 많은(폴루스, Πολύς) 소리들이 들려지길 원한다.

2025.12.15 @반포심산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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